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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소설번역/스타더스트 더 토끼!

1화 - 탈토와도 같이

by PPJelly 2023. 6. 18.

프롤로그

 

공무원인 교사에게는 부업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가상세계 전성 시대인 23세기에도 마찬가지이며, 공직에 특권이 부여되고 나서부터는 더더욱 용납되지 않을 죄가 되었다.

부업이 들통나면 직업을 잃고, 인터넷의 풍파에 휩쓸려, 두 번 다시 사회로 복귀하지 못할 만큼 두들겨맞는다.

그 부업을 들킨 그녀―― 모치즈키 토키코(望月 兎喜子)는 각오를 다졌다.

 

'죽일 수밖에 없겠어……!'

 

생명까진 빼앗지 않는다. 그저 소녀에게 연결된 정보를 파괴한다.

바이러스를 총에 넣고 불량하게 웃는 그녀를 노려본다.

총구를 겨누려고 하던 그때.

 

"나랑 같이…… 버츄얼 아이돌로 천하를 손에 넣지 않을래?"

 

그것은 그야말로 소악마의 속삭임.

28세의 독신 교사를 아름다운 전신으로 이끄는 유혹이었다.

 

 

 

 

본편

 

공무원인 교사에게는 부업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가상세계 전성 시대인 23세기에도 마찬가지이며, 공직에 특권이 부여되고 나서부터는 더더욱 용납되지 않을 죄가 되었다.

부업이 들통나면 직업을 잃고, 인터넷의 풍파에 휩쓸려, 두 번 다시 사회로 복귀하지 못할 만큼 두들겨맞는다.

그것이 현실이다.

웬만해선 그런 위험한 다리를 건너려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음악 교사의 벌이만으론 가족 전체를 먹여살릴 수도 없으니 말야.'

 

부모님 없이 일곱 형제자매를 돌보는 그녀――28세 독신의 고등학교 음악 교사 모치즈키 토키코는 빌딩 옥상에서 크게 한숨을 내쉰다.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교육열은 과열되기만 하고, 사회에서도 한 번 실패한다면 두 번 다시 위로 기어올라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지금의 토키코는 그야말로 그의 표본이다.

음대에서 배운 것을 활용하지도 못하고, 아티스트로서도 무엇 하나 세상에 남기지 못한 채 안정된 급료를 받아먹고 사는 토키코.

교사가 되고 싶어 된 게 아닌 그녀에게는 인생의 낙오자라는 말이 걸맞았다.

 

'……아차, 이러면 안 되지. 부정적인 생각 금지! 지금은 일에 집중해야 해!'

 

눈부시게 반짝이는 네온 사인이 비추는 가상도시, 제3도쿄.

국영의 가상세계에서 활동할 때 플레이어는 배포된 아바타를 사용한다.

돈이 있었다면 프로 조형사에게 의뢰해 따로 만들었을 테지만 토키코에게 그런 여유는 없다.

토키코의 아바타는 닳을 대로 닳은 너덜너덜한 회색 토끼탈.

이 한 벌로.

이 한 벌만으로 이미 8년이나 일하고 있다.

가상세계에서까지 경년 열화를 도입하는 건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일본인답달까, 쓸데없는 집착이랄까, 산업적인 신진대사를 촉진하기 위한 어둠의 사정 같달까.

막 쓰기 시작했던 때의 사랑스러움은 티끌만큼도 남아 있지 않다.

 

누더기인 토끼 모양 아바타를 움직이는 토키코는 양 발에 붙은 스프링 가젯을 노련하게 조종해 전자의 바다를 누빈다.

현실의 도쿄를 모방하여 만들어진 이 가상도시에서는 매일 밤 퍼레이드가 열리고,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핼러윈을 앞두고 있기도 해서 오늘 밤은 가장(假裝)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있었다.

 

'트래픽 초과 지수 239%. 이렇게까지 생난리를 피우면 더스트 데이터도 엄청 쌓이겠네.'

 

밤이 되면 인구의 약 20퍼센트가 오락을 찾아 국영 가상세계로 로그인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자면서 가상세계에서 향락을 즐긴다.

이것이 현대의 라이프스타일.

하지만 인구가 그만큼씩이나 모이면 당연히 서버는 무거워지고, 불필요한 더스트 데이터도 많아진다.

그 더스트데이터를 끌어모아 삭제하는 것이 그녀의 부업이었다.

 

'오, 말하자마자 발견. 꽤 크구나.'

 

빌딩 사이를 스프링으로 날아 오가며 단숨에 거리를 좁힌다.

이 분야는 비율제에 성과주의. 한 푼이라도 많이 받으려면 다른 플레이어에게 더스트 데이터를 뺏기면 안 된다.

빠르게, 빠르게, 그림자조차 밟지 못할 속도로 최대한 가속.

달이 뜬 밤을 날아다니는 회색 토끼는, 노이즈로 뒤덮인 더스트 데이터의 꼭대기로 뛰어오른 뒤 신축성과 점착성을 가진 스파이더 머플러를 힘차게 펼친다.

머플러 끝으로 더스트 데이터를 움켜잡고 그 손으로 끌어당겼다.

 

"좋았어 득템! 이걸로 할당량의 3배 달성! 오늘은 컵라면에 달걀 넣어버리기♪"

 

공중에서 3회전하며 승리의 포즈.

밤하늘을 물들이는 불꽃이 쏘아올려진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레이디이이즈 앤 젠틀맨!! 다음 주는 드디어 재팬 게임즈 랭킹 매치!!

도전자는 혜성처럼 나타난 초신성!! 버츄얼 아이돌 사무소 출신, 히노와 아르카(日輪アルカ)입니다!!]

 

그 뉴스에 토키코는 경악했다.

 

"마, 말도 안 돼?! 벌써 아르카가 랭킹 매치에 나온다고?!"

 

공중에 출현한 디스플레이를 올려다본다.

거기에 비춰진 것은 금발을 나부끼는 바니걸 아바타.

애교 있는 심록색 눈동자.

자신만만함이 흘러넘치는 미소.

항상 카메라를 의식하는 포징.

그녀의 아바타가 윙크를 한 순간, 실황석의 채팅창이 폭발했다.

 

[왔다! 왔다! 히노와 아르카가 왔다!!]

[데뷔하고 네 달만에 넘버즈에 도전한다고?!]

[대전 상대는 시큐리티 회사의 거대 마스코트, 일본 No.6의 다이고로마루!]

 

"우~~~와~~~ㄹㅇ로?! 이렇게 바로 재팬 넘버즈에 도전하나요!!"

 

토키코는 토끼 귀를 앞뒤로 흔들면서 환희의 소리를 지른다.

지금은 주류 문화로 일본을 석권하고 있는 버츄얼 아이돌계의 초신성, 히노와 아르카.

버츄얼 아이돌 문화는 21세기 초부터 존재했으며, 그때의 머릿수는 이미 2만 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23세기 현재의 인구는 그 백 배.

2백만 명에 달하는 버츄얼 아이돌이 격전을 벌이는 대전국시대.

수많은 버츄얼 아이돌이 대성하기를 꿈꾸고선, 해마다 3만 명씩이나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그런 시체더미나 다름없는 업계 안에서 홀연히 빛을 발하듯이 나타난 소녀.

그것이 히노와 아르카다.

아나운서는 구관조 아바타로 열띤 듯이 말한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그녀의 데뷔는 단 4개월 전!!

전적을 따지지 않는 무제한급 재팬 컵에 출전해, 무명인 몸으로 차례차례 상위 랭커들을 격파하며 2위의 영광을 차지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16세의 어린 나이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수많은 테크니컬한 플레이와 소악마적인 토크를 선보인 후, 버츄얼 아이돌로 당당히 데뷔!

노래, 입담, 싸움 어느 하나 부족한 게 없는! 모든 것이 고레벨인 제너럴리스트 아이돌로서 활약하는 그녀를, 넘버즈가 추격한다!]

 

침을 튀기면서 열렬한 해설을 날리는 구관조의 말에 토키코도 열렬하게 끄덕이며 반응한다.

무엇을 숨기랴, 토키코의 최애 아이돌 역시 이 히노와 아르카였다.

가창력·화술·게임 테크닉은 예나 지금이나 버츄얼 아이돌의 삼종신기와도 같은 것이지만 그 모두를 갖춘 자는 드물다.

특히 가상세계가 넓게 침투해 플레이어 인구가 폭증한 이 23세기에, 테크닉으로 사람들을 매료하는 아이돌은 멸종위기종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아르카는 무제한급 대회――그것도 모든 장르의 게임으로 승부하는 대회에서 찬란한 데뷔와 실적을 남겨 보였다.

FPS, 레이싱, 격투 게임, 전략 게임,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즉 히노와 아르카는 전국면 아이돌이자 올라운드 플레이어.

가상세계 전성기인 이 시대에 선택받은 소녀이다.

 

"하아~……대단하네에……난 열여섯 살 때 뭐했지……."

 

빌딩 옥상의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사색에 빠진다.

같은 토끼인데……히노와 아르카와 모치즈키 토키코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히노와 아르카는 그 이름과도 같이 시대를 비추기 위해 나타난 태양의 아이.

한편 모치즈키 토키코는 볼품없는 음악교사에, 밤에는 쓰레기를 주우며 생계를 유지하는 재투성이 토끼.

 

"하하……비교할 것도 안 되는구나……."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쉰다.

 

'그렇지만, 최애 아이돌이 급성장을 이루는 건 행복한 일이야. 아르카는 첫 시합 때부터 계속 팠었잖아. 지금은 솔직하게 기뻐하자.'

 

덕질은 빈곤한 생활에 얼마 없는 여흥거리. 삶의 양식이라고 말해도 좋다.

아르카처럼 시대에 선택받은 재원을 최고참 팬으로서 응원할 수만 있다면 그만큼 기쁜 일도 없을 것이다.

토키코의 소소한 행복은 단지 그것뿐.

……그것만으로 좋았을 텐데.

 

"어라라? 이런 곳에 먼저 온 분이?"

 

……엥? 하고 얼빠진 목소리를 낸다.

토키코가 뒤돌아보기보다 앞서서 목소리의 주인이 걸어온다.

플래티넘 블론드의 고귀한 머릿결을 나부뀌며 얼굴을 살피는 그 소녀는 태양(日輪)과도 같이 웃어보였다.

 

"잠깐 있어도 괜찮? 가장 퍼레이드에 왔었는데 파파라치한테 들켜서 말이에요."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유연한 태도.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 이상한 미소.

투명하고 달콤한 위스퍼 보이스.

 

잘못 보았을 리 없다. 잘못 들었을 리가 없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슈퍼 뉴 아이돌……히노와 아르카가, 볼품없는 누더기 토끼에게 미소를 지은 것이다.

 

'우와?! 우와?! 우와?!?!? 가까이서 보니까 세 배는 아름다워!! 아바타 조형 대박!! 아니 그게아니라 목소리 개이뻐!! 변조도 없이 이정돈데 국보임?! 국보 아닌가요?!?! 얼마내면 될까요?!?!?'

 

갑작스럽게 밀려온 최애의 정보량에 패닉을 일으키는 토키코.

아르카는 그런 토키코의 심정 같은 건 전혀 모른 채 너덜너덜한 토끼 귀를 만지며 거리를 좁힌다.

 

"이 토끼 아바타 귀엽네.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앤티크 컨셉으로 쓰는 거야?"

"아…… 뀨……!?"

"뀨?"

"뀨우우우아아아아아아!?!"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탈토와도 같이 대탈주.

밀려오는 최애의 정보량을 견딜 수 없게 된 토키코는 스프링 가젯을 풀가동해 튀어나갔다.

 

"아, 잠깐 거기 서!!"

 

도망치는 회색 토끼를 뒤쫓는 아르카. 특별히 쫓아갈 이유는 없었지만 도망치면 따라가고 싶어지는 것이 본능이다.

두 마리 토끼가 네온 사인이 비추는 도쿄의 빌딩을 누빈다.

아래에서 가장 퍼레이드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그 궤적을 발견한들 단순한 유성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곧장 붙잡을 작정이었던 아르카였지만, 일곱 번째 빌딩을 뛰어넘었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말도 안 돼……?! 내가 전혀 따라잡을 수 없잖아?!'

 

앞에서 말했지만, 히노와 아르카는 톱 클래스의 올라운드 게이머이다.

장애물을 넘으며 달리는 스파르타식 레이스 역시 어김없는 특기 분야. 그 실력은 톱 게이머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서로 범용 가젯밖에 쓰지 않는 거기서 거기인 상황인데, 따돌려지지 않는 것이 고작이다.

 

"자, 잠깐만 기다려! 기다리라니까!!"

"뿌뀨웅!! 뀨우웅앙?!"

"제길, 적어도 사람 말로 해!"

 

아르카는 핏대를 세우며 소리치지만, 언어 중추가 마비된 토키코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겠지.

최애와 사적으로 일대일이라니, 사고회로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을 리 없다.

지능지수는 저하, 뇌내 시냅스는 혼전, 접촉하고 싶다와 도망가고 싶다의 이율배반이 대폭주.

결과적으로, 토끼는 짐승이 된다!!!

 

"뀨우우아아ㅏ아아앙!!!"

 

결국……, 10분 이상 계속된 두 마리 토끼의 경주는, 회색 토끼가 강제 로그아웃으로 모습을 감추면서 막을 내리는 것이었다.

 

 

*

 

 

――그리고 다음 날.

 

'망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인생 최대의 찬스 같았는데?!'

 

이른 아침, 조깅과 보이스 트레이닝을 마치고 세면대 앞에서 후회하는 토키코.

버츄얼 아이돌이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때 업무용 아바타를 쓰는 일은 거의 없다. 아니 전무하다. 톱 아이돌이라면 0%다.

하지만 히노와 아르카의 미성――유일무이한 슈퍼 위스퍼 보이스를 잘못 들었을 리가 없다.

음대 출신의 명예를 걸고, 그건 히노와 아르카의 실물이었다.

 

'아직 유명해졌다는 자각이 없어서 인터넷 활용이 서투른 거려나……. 아직 열여섯이고 말이지……. 후후, 풋풋하네.'

 

슈퍼 아이돌도 평범한 아이라는 데에 안심한다. 오히려 더 팔 맛이 난다.

그에 비해서――

 

"뀨우우아아ㅏ아아앙!!!"

 

"………."

 

훗……, 하고 흐린눈을 한다.(*역주: 난처한 상황에 현실부정을 할때 쓰는 遠目라는 은어. 흐린눈으로 번역)

최애에게 추태를 드러낸 끝에 의문의 괴성을 지르며 짐승으로 돌변.

아아, 천국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

토키코는 화려하게 몸도 마음도 짐승이 되었습니다.

 

까고 말해 죽고싶다.

 

"하아……. 언제까지고 쭈그려 있을 순 없어. 학교에 접속해야지."

 

방으로 돌아와 좌식의자 형태의 BSI――브레인 사이버 인터페이스에 앉는다.

좌석에 앉을 때마다 구형의 조잡한 기계라며 기죽게 된다.

 

20세기의 서브컬처에는 뇌를 기계화한 인공두뇌가 제재인 사이버펑크 작품이 많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실에서는 뇌파를 읽어들이는 블루투스가 21세기 초에 이미 출현했고, 그 이래로는 악세사리처럼 걸치고 있는 것만으로 뇌파의 트래킹과 송수신이 가능해져 혼합현실(MR, 믹스드 리얼리티)과 가상세계를 동시에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뭐, 그런 고급스런 걸 살 돈은 없지만요.'

 

문제는 모치즈키 가의 BSI가 골동품에 가까운 좌식의자라는 점.

고등학교의 서버에 접속하면 8시간은 그 자세로 구속되기 때문에, 계속 앉아 있어 건강에 나쁘다는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접속 종료와 동시에 밀려오는 요통은 스물여덟 살에게는 괴로운 현실이다.

 

'아차. 어제 더스트데이터 삭제하는 걸 깜빡했어.'

 

업무용 폴더를 열어 더스트 데이터를 열람한다.

그러자 토키코의 방화벽이 반응했다.

 

"으엑, 뭐야 이거. 정보은행을 폭파하는 바이러스잖아!"

 

더스트 데이터인 줄 알고 있었던 데이터는, 뇌파에 연결된 외장형 정보은행을 그대로 백지화하는 바이러스였다.

감염되면 인터넷 상의 정보 보존 서비스와 외장 디바이스까지 모조리 정크화되는 무시무시한 물건이다.

 

"위험하게~! 공직의 특급 방화벽이 없었다면 나도 당할 뻔했잖아! 이런 건 얼른 삭제……아니, 정보강도 높앗!!"

 

아주랄 것까진 아니지만 시판 바이러스 버스터로는 처리할 수가 없다.

이런 위험물이 길거리에 떨어져 있으니 토키코처럼 인력으로 작업하는 청소부가 필요해지는 것이다.

 

"안 돼, 손을 못 대겠어. 집에 가면 시청에 제출해야지."

 

마음을 다잡고 학교의 서버에 액세스한다.

 

'교사 ID 인증 완료. 액세스 개시… 좋아.'

 

의식이 가상세계로 비상한다.

뇌파로 자각몽을 보여 주는 전기 신호가 블루투스와 링크되어, 점차 가상세계로 풀 다이브시킨다.

 

교육의 주전장은 가상세계로 이행되어, 일본의 학교 80%는 네트워크 상에 존재하고 있다.

육체를 동반하지 않는 교육은 정서교육 면에서도 나쁘다는 등 반대 의견이 많았던 사이버 스쿨이지만, 일본 전역의 초·중학생이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음으로써 결과적으로 교육 격차가 없어지고, 더욱이 학교폭력의 가시화와 박멸 등 플러스가 되는 부분이 다수 확인되어 현재처럼 주류가 되었다.

결국 교육 현장에 요구되었던 건 사회적 거리두기였다는 말이다.

학교에 로그인해 교문에 서자, 동시에 등교한 여학생들이 인사를 한다.

 

"아, 톳키 좋은 아침~!"

"안녕."

"오늘도 여전히 미인이네~."

"그 외모로 음악 선생님이나 하고 있고, 진짜 아끼다 똥될 것 같다니까!"

 

꺅꺅 새된 웃음소리를 내며 멀어지는 여학생들.

칭찬하는 건지 욕하는 건지 모르겠는 건 여학생 특유의 텐션 때문이리라.

사이버 스쿨에서는 아바타 사용이 허용되지 않아 학생도 교사도 본인의 모습 그대로를 투영한 모델을 쓰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다.

교사로서의 전용 복장으로도 수수한 백의가 구비되어 착용을 강요받고 있다.

 

'외모……, 외모라.'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백금발은 일본인과 거리가 먼 용모를 띄게 했기에, 어릴 적에는 어른들에게 예쁨받곤 했다.

 

――'커서 슈퍼 모델이 되겠네!'

나,

――'아니아니, 톱 아이돌이겠지!'

……등등.

 

주위에서 추켜세워진 걸로 우쭐해져서, 그 길로 노래도 열심히 공부했고, 우여곡절을 거쳐서 이런 결말.

 

'……별볼일없는 음악 선생이라 미안하네요.'

 

'외모가 잘나면 인생은 장밋빛, 데뷔든 뭐든 바라는 대로' 같은 시대는 두 세기 전에나 끝났다.

일류 조형사가 만든 아바타는 실물 아이돌의 인기를 아득히 넘는다.

23세기가 바라는 것은 생화가 아닌 조화.

 

가상세계로 인해 확대된 오락 산업은 현실 세계를 뒤덮었으며,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는 가상세계로 표현의 장을 옮겼다.

지금 리얼 아이돌과 버츄얼 아이돌의 인기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아이돌로서 정말 필요한 것은 외모가 아니라 삼종신기.

 

가창력, 화술, 게임 테크닉.

 

그걸 인식하고 필사적으로 보이스 트레이닝에 매진했지만 재능을 꽃피우진 못했고, 그래도 음악은 하고 싶어서 무리해서라도 음대에 진학했고……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아티스트 따위를 꿈꿀 여유조차 없어져서.

부모님의 유산이 남아 있을 때 어찌저찌 교원 자격을 얻어 안심되고 안전한 공직으로 도망쳤다.

일곱 형제자매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필사적으로 되뇌이며.

 

'뭐, 그것도 앞으로 조금만 참으면 나아지겠지. 아즈사(梓)랑 타케루(武)는 대학을 졸업하고 구직 중이니까. 그렇게 되면 부업은 때려치자!'

 

깨어 있는 시간과 수면 시간 양방을 근로에 사용해 왔던 토키코는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형제자매들이 직장을 구한다면 그만큼 여유도 생긴다.

물론 덕질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아르카도 백금발이었지……. 마이픽과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하면 이 머리도 나쁘지만은 않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내로 들어간다.

오늘 하루도 교편을 잡아 보도록 하지.

 

 

*

 

 

"……최고로 비참한 하루였어."

 

아침의 들떴던 기분은 뭐였을까.

토키코는 피곤에 찌들어 핼쑥한 얼굴로 군소리를 내뱉는다.

오늘은 학생 간에 일어난 치정싸움에 질리도록 끌려다녔다.

생화보다 조화의 시대라고 상술했지만 그 말은 취소.

그건 아이돌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로, 연애 대상은 역시 실물의 인간으로 한정된다.

 

서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마주하는 학교는 인생에서 가장 연인을 찾기 쉬운 장소. 사회에 나오면 아바타로 만난 남여친이 사귀고 나서까지 계속 본모습을 속이고 있었다는 둥의 사건이 끊이질 않는다.

사랑에 굶주린 남학생들에게 있어 토키코의 용모는 너무나도 자극적이었다.

오늘 점심 시간에도, 남자 넷에게 공공장소에서 동시에 고백받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중 하나는 서열 상위권 인싸. 교내에서도 인기인인 청량미남. 고백을 거절하니까 걜 좋아하는 여자가 나한테 소리지르나 싶더니 갑자기 청량남한테 고백하는데 청량남이 "내 눈엔 선생님밖에 안보이거든" 이래서 모든 여자들의 적의가 나한테 와다다다다 날아와서 떨려 미치는줄 알았단말야 마음을 못추스리겠어 도와줘 내 쵱캐 히노와 아루카,,,!!'

 

뀨우우와앙앙…… 하고 울고 싶은 토키코.

사람은 극한까지 몰리면 우상(아이돌)에게 도움을 청하는 법. 그것은 23세기가 되어도 변하지 않는다.

소동의 규모가 지나치게 커져 토키코는 교장실로 불려갔고, "너무 예뻐도 고생이네. 좀더 조신하게 다니면 학생들도 얌전해지지 않을까요?" 라며 성희롱 비스무리한 잔소리를 듣고 왔다.

 

'내 경험상, 지금쯤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내가 나쁘다는 의견이 퍼져 있겠지……. 이렇게 아름답게 산화한 건 다 걔네 때문이었는데……. 후후, 힘들어…….'

 

내일부터는 무슨 낯으로 교단에 서야 할까.

어깨를 푹 숙인 토키코는 터벅터벅 복도를 걷는다.

벌칙으로 방과 후의 순찰을 명령받아 현재에 이른다.

방과 후부터 이미 2시간이 지나 교내에는 학생도 교사도 남아 있지 않다. 동아리는 다른 서버에서 이루어지고 교사들의 업무는 집에 가져가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확인이 끝났다면 학교의 서버를 닫는 것뿐.

한산한 교내를 모두 확인한 그때.

 

――그녀는, 소리도 없이 나타났다.

 

"……설마 찬스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응? 하고 물음표를 띄우면서 뒤돌아본다.

등 뒤에 서 있던 것은 의미심장하게 웃음짓는 투 사이드 업의 여학생.

소악마 스타일의 장신구와 주근깨가 눈에 띄는 아이였다.

 

"너는……, 킷쇼 에리카(吉祥 エリカ)양?"

"네."

"무슨 일이야? 얼른 로그아웃하지 않으면 학교가 닫힐 거야."

"알고 있어요. 그치만 어떻게든 선생님과 일대일로 대화하고 싶어서."

 

눈을 가늘게 뜨며 웃는 킷쇼 에리카.

하지만 토키코와 에리카는 지금까지 한 번도 접점이 없었다. 수업에서도 대화라곤 아주 조금밖에 나누지 않았다.

굳이 이런 식으로 말을 걸 이유는 없을 텐데――혹시 점심에 있었던 고백 소동 때문일까.

 

"안되죠, 선생님이면서 그런 짓을 하면. 공직자가 부업을 가지면 바로 모가지라고요?"

 

토키코는 사고가 얼어붙었다.

그 비밀만은 절대 알려지면 안 됐기 때문이다.

 

"무……, 무슨 소릴,"

"사이버 더스트 클리너 사였죠. 8년 전부터 근무하고 있고, 3년 연속으로 최고 실적을 달성 중인 실력파 청소업자. 일곱 형제자매를 먹여살리기 위해 교사와 청소부로 투잡을 뛰며 살고 있었다. ……맞죠?"

 

질척하게 웃으며 한 걸음, 또 한 걸음 다가오는 에리카.

 

"노력한 보람이 있어서, 쌍둥이인 차남과 차녀는 내년에 대학을 졸업. 네쌍둥이도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음. 여자가 홀몸으로 모든 형제들의 생활을 떠받치고 있다니……. 후후, 의외로 악착같이 사셔서 친근감이 생겨났어요♪"

 

토키코는 완전히 패닉에 빠졌다.

교직원은 가상세계에서 불량학생의 선도 등 몇 가지 특권을 공유하기 때문에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질타받고 있다. 때문에 부업이 밝혀져 논란이 일어나고, 개인정보부터 하나하나 털려서 인터넷에서 조리돌림당하는 사건은 적지 않다.

집으로는 회선이 터질 정도의 악질적인 메일이 날아오고, 무고한 가족들까지 조롱당하는――그런 사건이 바로 얼마 전에도 일어났던 참이다.

 

'큰일이야큰일이야큰일이야……! 지금 나 때문에 불판이 일어나면 아즈사와 타케루의 취직에도 영향이……!!'

 

그뿐이 아니다. 다른 식구 전원의 미래에도 상처가 남는다

사회초년생들의 경력을 쉽게 조사할 수 있게 된 23세기에 가족에게서 논란이 터진다는 것은 일생에 남을 마이너스 요소다.

최악의 경우 가족 전체의 미래를 뺏기고 길거리를 떠도는 신세가 된다.

일곱 형제자매와 야반도주하는 미래를 떠올린 순간――토키코의 뇌내는 폭발했다.

 

"사……, 사람 잘못 보셨어요!!!"

 

스프링 가젯을 양 발에 장착하고 탈토와도 같이 도망쳤다.

조금만 머리를 굴려도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걸 바로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토키코에게 그런 여유는 없다.

에리카에게서 달아나기보다 현실에서 달아나고 싶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에리카도 양 발에 스프링 가젯을 장착하여 맹렬한 스피드로 쫓아간다.

 

"오늘이야말로 놓치지 않겠어!!"

 

양방 모두 잔상이 생길 정도의 속도로 교내를 달린다.

두 사람이 튀어오를 때마다 폭풍이 일어나고, 교실 창문의 유리가 흔들린다.

교사의 출구까지 최단 루트로 뛰쳐나간 토키코는 문의 손잡이를 붙잡고 아연실색한다.

 

'마, 말도 안 돼?! 안 열려?! 대체 왜?!!'

 

전자 자물쇠가 걸려 있어 탈출할 수가 없다.

강제 로그아웃을 한다면 학교 측에 사정 설명을 요구받고 부업이 까발려질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따라잡았다!!"

"꺄아악?!"

 

일직선으로 달려든 에리카를 피해 쏜살같이 도망치는 토키코.

에리카는 스프링 가젯의 한계를 넘어선 순간가속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놀랐다.

 

'역시 이상해! 스프링 가젯은 도약할 때마다 가속도가 붙는 가젯, 그런 만큼 초기 속도는 비슷할 터야! 이미 가속 상태였던 내가 선생님의 초기 속도를 못 따라잡을 리 없어!'

 

더욱이 최대 속도를 유지하는 데에는 자세 제어나 체중 이동 등 다양한 플레이어 스킬이 요구된다.

그것들은 하루아침에 몸에 익는 것이 아니다.

스프링 가젯은 폭넓게 사용되는 범용 도구지만, 그 초기 속도는 매우 느려 프로 수준에 달할 때까지 사용하려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가속 후 조작에도 치밀한 스킬이 요구되기 때문에 이론 상의 최대속도를 유지하는 것은 재팬 넘버즈여도 어려울 것이다.

 

'역시……, 이 선생님과 함께라면……!'

 

한편 토키코는 다음 수를 생각하지 못한 채 자신이 담당하는 교실로 뛰어들고 있었다.

 

'어, 어떡하지?! 어떡하지?!'

 

평정심을 잃은 결과 스프링 가젯을 잘못 조작하여, 복도에서 성대하게 미끄러졌다. 토키코를 투영한 모델의 왼발목에는 상처가 나고, 스타킹은 찢어졌으며, 더 이상 도망칠 수가 없다.

뭔가 다른 방법은 없을까 싶어 자신의 유저 패널을 열어 폴더를 뒤진다.

필사적으로 스크롤을 내리던 중, 아침에 발견했던 사이버 바이러스에 눈길이 머문다.

 

'그, 그래……. 저 아이는 내가 일하고 있다는 증거를 어딘가에 숨기고 있을 거야. 아무리 대화로 풀려고 해도 그 증거가 있는 이상 도망칠 순 없어……!'

 

그러나 이 바이러스라면, 그녀가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를 통째로 말소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 뒤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기만 하면――

 

"드디어 찾았다. 이젠 놓치지 않아, 선생님."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에리카는 교단 밑에 숨은 토키코에게 한 발짝, 또 한 발짝 걸어온다.

단죄를 기다리는 범죄자의 기분이란 마치 이런 상황을 두고 있는 말이겠지.

토키코는 요동치는 심장을 누르며 각오를 다진다.

 

'죽일 수밖에 없겠어……!'

 

일어서서 피스톨 가젯을 꺼내고, 총탄으로 변환한 바이러스를 집어넣는다.

막 총구를 겨누려고 하던 그때.

에리카는, 소악마의 미소를 띄우며 속삭였다.

 

"있잖아, 선생님."

"――?!"

 

"나랑 같이…… 버츄얼 아이돌로 천하를 손에 넣지 않을래?"

 

한순간의 침묵.

토키코는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에리카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총을 교단 아래에 감춘 채 경직된 토키코와, 웃음을 띤 에리카.

먼저 움직인 쪽은 에리카였다.

 

"아, 그렇구나. 변조한 학교용 목소리로는 모르겠네.

이 목소리면 알아보겠어, 어젯밤의 회색 토끼 씨?"

 

토키코는 마침내 말을 잃었고, 들고 있던 총을 그 자리에 떨어뜨렸다.

토키코 자신의 명예를 걸고 절대 헛듣지 않으리라고 단언했던 목소리.

하늘이 선사한 유일무이한…… 슈퍼 위스퍼 보이스.

 

"…………………………………………………………………………거짓말이지……?!"

"진짜인데? 토키코 쌤♪"

 

최애에게 이름을 불려 "뀨아앙?!" 하고 소리를 지르는 토키코.

 

그것은 그야말로 소악마의 속삭임.

28세의 독신 교사를 아름다운 전신으로 이끄는 유혹이었다.

 

 

 

 

 

 


번역 코멘트

 

호무라나 요우나 흑토끼의 팬들처럼 지금까지의 작품에서 등장했던 오타쿠 캐릭터들이 5채널~후타바의 정서를 가진 남초 계열이었다면, 토키코는 전형적인 여초 성향 덕후이고 일본 여성향 여덕들한테 매우 잘 먹히는 캐릭터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 나이는 먹었지만 멘탈은 갓난아기고 자존감도 건강도 바닥이라는 어필이 많음
  • "에엣 전 아무것도 안했는데 제 주위에서 스펙터클한 일이 벌어지고 존잘존예들이 절 가지고 놀아요 후엥ㅠㅠㅠ" 이 일상이지만 사실 외모는 준수한 편이고, 본인은 자각이 없지만 일정한 트리거로 발휘되는 잠재능력을 가지고 있음
  • 만사를 부정적으로 보지만 주변인들의 칭찬을 받으면 자신감이 폭주해 인정욕구 몬스터로 거듭남. 그러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는 순간 다시 자존감은 나락으로
  • 항상 남에게 리드당하는 위치이기 때문에 표면적인 성격은 차분하지만, 독백하거나 혼자 있을 때는 주접스럽고 히스테리도 잘 부림
  • 경우에 따라선 술담배를 하거나,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거나, 과거 이성관계가 복잡했다는 옵션이 붙기도 함

 

▶ 日輪이 니치린인지 히노와인지 안 써져있어서 일단 후자로 번역. 추후 정식 발음법이 나온다면 대처하겠습니다.

 

백금발(플래티나 블론드)이나 스타더스트, 태양+아르카라는 작명 등 문제아를 연상케하는 요소가 많이 보이는데 설마 이것도?

 

▶ 에리카의 성인 킷쇼(吉祥)는 일본어로 '좆같네'와 발음이 같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가은' 비슷한 네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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