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나이트의 거리는 곳곳이 파괴되어, 지금은 잔해 처리 작업이나 부상자 구호 등에 급급해 있다.
가까운 주변인을 잃은 자도 많아 이곳저곳에서 어두운 표정이 눈에 띄었다.
'이게 전쟁이라는 건가…….'
아무리 경찰이었어도, 평화로운 세상의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난 나에게는 견딜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내 공격에도 빈사할 만한 중상을 입은 사람은 물론이요 목숨을 잃은 자도 있으리라.
후회하진 않는다.
결코 후회하진 않지만, 전쟁 중에 많은 목숨을 앗아갔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겨 놓는다.
"……응? 저택에 잡아 놓은 거야??"
"네. 백부님께서 노아 장군만한 인물이면 감옥에 가두기엔 위험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신 바라……. 마법 봉인 자물쇠로 마력을 봉인해 놓은 것만 빼면 객실에 유폐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래도 승자는 우리잖아? 그렇게까지 마음 쓸 필요가 있을까?"
"그건……, 우리나라와 제국의 국력 차이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국토도 작고, 특별한 자원이 있지도 않습니다. 침략받아도 군비가 제일 큰 문제에요. 지금까지 줄곧 제국에 방위세를 내면서 종속되어 있던 처지였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놀랐다.
유복한 나라라고까진 생각하지 않았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절박한 상황이었을 줄이야. 지금까지 반쯤 속국이 되어 있었단 말인가…….
[테라니아 왕국의 특산품은 양질의 밀. 그 이외에는 귀금속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군비도 약소. 불면 날아갈 정도의 소국입니다.]
"그런 나라를 침략하러 왔다는 건……, 설마 마키나를 노렸나?"
"그럴지도 모릅니다. 유피테르 제국은 신기 수집을 국시로 내세울 정도로 이상한 집착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설마하니 침략하러 올 줄은……."
나는 더욱 깜짝 놀랐다.
마키나를 쳐다본 나는 텔레파시로 묻는다.
'설마 신기를 모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이야기……평범한 사람들한테는 안 알려져 있는 거였어?'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아쿠로 대제는 분명히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집에 나서지도 않았겠죠.'
'최악의 상대가 경쟁자라는 거군. 그렇다면 앞으로의 계획도 잘 생각해 둬야겠어.'
저택 안으로 안내받은 우리는 층계를 올라 그들이 유폐된 방으로 향한다.
문을 열자 양팔에 마력 봉인 자물쇠가 채워진 금발의 남자와 켄타우로스족 남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켄타우로스족 남자――겔트미르가 나를 희번득 노려본다.
"그 마력……, 그런가. 네놈이 그 갑옷의 사내인가."
"그럼 어쩔 거냐, 말자식아."
"흠, 맨얼굴이 생각보다 평범해 김이 빠졌을 뿐이다. 더 경험이 많은 전사의 형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야."
시꺼. 이래봬도 5년 전까진 경찰관이었어.
반인반마인 괴물 따위한테 눈싸움에서 지겠냐 이 등신아.
"잠깐 기다려, 겔트미르 공. 패군의 장수를 이렇게까지 해서 만나러 와 주셨잖나. 그것만으로도 좋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금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쾌활한 미소로 인사를 표한다.
"처음 뵙겠다, 철의 전사님. 내 이름은 노아 브라이트. 귀공의 이름을 물어도 되겠나?"
"……죠가사키 류마."
"호오, 동양 이름이라니 진귀하군. 출신이 그쪽인가?"
[정보를 캐내려고 해도 의미없을 겁니다. 류마의 출신을 당신들이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어이쿠, 실례했군. 그대는…… 고양이?"
[부정. 본 기기는 신조 병기 <데우스 엑스 마키나>. 신이 창조한 AI입니다.]
'호오' 하고 의외라는 듯한 소리를 내는 노아 장군.
나는 무심결에 머리를 싸쥐었다.
"……바보야. 네 입으로 정보를 불면 어떡하냐."
[엥? ……아, 아니, 아닙니다, 아닙니다, 취소합니다!! 전 이제 고양이에요!! 말하고 대화할 수 있는 지적인 검은 고양이일 뿐이에요!!!]
"하하, 친절한 자기소개 감사하기 그지없군. 역시 신기 적합자였나. 테라니아 왕국은 이 힘으로 유피테르 제국에게 활시위를 겨누려는 건가?"
자리의 분위기가 얼어붙는다. 특히 살리아의 표정은 딱딱하다.
"우리 제국이 신조 병기를 보고도 놓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반드시 다음 군대가 <아트 나이트> 도에 몰려오겠지. 전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대군을 이끌고서 말이야."
"허나 이 도에는 많은 포로가 있습니다. 장군 두 명과 군대 하나를 맞바꾸면 정전쯤은,"
"하하핫! 그 아쿠로 대제가 고작 포로를 이유로 정전 협정을 맺을 것 같으냐? 만일 정말 그런 일이 생긴다면 폐하께서 실성하시지 않았는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겠군!"
음, 힘있게 끄덕이는 켄타우로스족 남자.
도, 동료도 이렇게 말할 정도면 보통 놈이 아니구나 아쿠로 대제……!
"군의 편성과 침공까지……, 그렇지. 앞으로 7일쯤 걸리겠어. 신기를 내려받은 이 삼휘장, 노아 브라이트가 패했다고 한다면 다음에는 복수의 신기 적합자와 신수 사역자들이 들이닥칠 게 틀림없어. 귀공 혼자서 온전히 <아트 나이트> 도를 지킬 수 있을까?"
"……뭘 말하고 싶은 거지?"
"제국의 목적은 신조 병기다. 신조 병기 수집은 우리나라의 국시이기도 하지. 그대가 군영으로 들어와 나의 신기를 반납해 준다면 정전으로 흘러갈 수 있을지도 몰라."
"자, 장난하지 마십시오!! <아트 나이트>도를 구하신 영웅을 팔아넘기는 짓을 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격노하는 살리아.
그러나 나는 그럴 때가 아니었다.
"당신, 신기를 갖고 있지?"
"그래. 그대들이 파괴한 공중 함정이 그거야. 평상시에는 이런 형태지만 말이지."
목에 걸려 있는 펜던트를 보여 준다.
언뜻 보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마력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마키나와 얼굴을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문제 없겠네. 우리가 직접 나가면 끝날 일이야."
[긍정. 신기가 목적이라면 우리를 따라올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득이 적은 <아트 나이트> 도를 공격하는 것보다 우리를 뒤쫓으려 하겠죠.]
"호오? 제국을 상대로 단둘이 도주극이라. 현실적이지 않군. 제국은 나를 포함한 신기 적합자를 다섯 명 획득한 상태이다. 다음은 필승을 내다보고 신기 적합자를 여럿 보내겠지. 과연 피해 갈 수 있을까?"
"그거 좋네, 우리도 신기를 모으고 있어서 말야. 그쪽에서 먼저 와 준다면 만만세지."
노아 장군의 웃음기가 사라진다.
몸을 앞으로 숙인 그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위압적인 분위기로 묻는다.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군. 신기를 모은다는 것은 곧 폐하도 소문을 들으신다는 것. 도망치면 모르겠지만 아쿠로 대제께 반기를 들려는 셈인가?"
"그래."
"자만하지 마라!! 유피테르 제국에는 다섯 명의 신기 적합자와 일곱 명의 신수 사역자, 백이십 척의 공중 함정!! 그리고 이백사십만 대군이 대기하고 있다!!! 그 모든 것과 대적해도 상관없다는――그런 것이로군, 귀공은!!!"
노아 장군의 일갈을 두려워하지 않고 똑같이 노려본다.
혹시 정말 신기를 모아서 여러 소원을 이룰 수 있다면 아쿠로 대제에게만은 넘기면 안 된다. 그처럼 침략 전쟁을 일으키려는 상대에게는 특히 져선 안 된다.
"――각오한 바다. 나는 절대 아쿠로 대제에게만큼은 지지 않아."
"그렇구만. ……그렇구만."
노아 장군은 눈을 감고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 상태로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노아 장군은 별안간 무릎을 치며 웃었다.
"좋아. 그럼 그 저승길로의 여행……. 나도 함께하지!"
"……뭐?"
――……예?
--- 번역 코멘트 ---
▶ 이번 화에도 나온 문제아 요소. 펜던트가 무기로 변한다는 것이 흡사 생명의 목록을 연상케 하고, 사용자인 노아 '브라이트' 역시 이름 면에서 요우(耀, 빛날 요)와 공통점이 보입니다.(하단에 수정)
▶ 21.11.18 수정
노아 브라이트는 건담 시리즈의 함장 브라이트 노아의 패러디였나 봅니다....ㄱ- 다만 아주 연관이 없어 보이는 것도 아니기에 잠정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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