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했던 흐름에 누구 할 것 없이 귀를 의심했다.
특히 겔트미르는 유독 충격이 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아연실색했다.
"무……무슨 말씀이시오 노아 장군?! 아쿠로 대제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잊으신 거요?!!"
"잊진 않았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아쿠로 대제가 하는 대로 따를 수 없어. 지금 우리 부족은 전선이 확대되면서 완전히 피폐해졌네. 우리 기인(機人)족은 이대로라면 멸망일로를 걷겠지. 그렇게 되기 전에 누군가가 전쟁을 멈춰야만 해."
"허, 허나 영웅으로까지 불린 장군께서 나라를 이탈하면 전체의 사기가 영향을 받소이다!"
"미안하군. 내게 중요한 건 제국의 미래가 아니라 일족의 미래일세."
격렬하게 말을 나누는 두 사람.
한창 달아오를 때 끼어들어 죄송하지만 내게는 속사정이 보이지 않는다.
"노아 장군, 이유를 물어도 괜찮을까?"
"아, 물론이지. ……귀공도 봤잖는가? 그 하늘을 나는 함정을. 그건 고대 유적에서 발견된 걸 소수민족인 우리 기인종이 조립한 걸세."
"헤, 대단하네."
"그런 기술을 가졌었기에 기인종의 나라는 50년 전에 제국에 의해 멸망하고 흡수되었어. 이후로는 전쟁을 위한 병기 개발에 종사하고 있고. 이 때문에 기인족은 전투민족이라 비난받으며 세계적으로 박해를 받고 있다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살리아와 마키나에게 묻는다.
"정말 그래?"
"ㅇ, 예. '기인족의 전장에는 피와 철의 비가 내린다'는 야유가 떠돌 정도입니다."
"그렇다네. 그렇게 기인종은 기피되고 있지. 이것도 모두 전쟁의 불씨를 뿌리고 다니는 유피테르 제국으로 인한 걸세."
눈을 감은 노아 장군은 안타까운 듯 입술을 깨문다.
"지금의 현상을 바꾸고 싶다는 바람으로, 내 나름대로 열심히 공을 세워 봤지만……. 영웅이라는 식으로 떠받들어지기나 하고, 오히려 전화(戦火)는 늘어 갈 뿐. 신기를 하사받은 뒤로 얼마나 많은 전장에 파견됐는지 모르겠군. 홀로 계속 헤매고 있던 차에 귀공이 나타났어.
"내가?"
"그래. 유린당하는 도시의 방패가 되어 아쿠로 대제에게 활을 겨누는 그 모습에,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찾게 되었어. 나는 귀공이 싸우는 모습에 마음이 이끌렸네."
내 앞으로 걸어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다.
"부탁하네. 나도 데려가 주게. 원치 않는다면 이 목을 치고 신기만을 가져가도 상관없어. 어느 쪽을 선택하든 제국에게 패전에 대해 처벌받을 몸이네. 어떻게 하든 상관없네."
……그 정도까지 각오한 건가.
그렇지만 고민되네.
어떻게 할까, 마키나?
[당신의 의사에 맡깁니다. 말을 지나치게 술술 하니 배신하지 않는지 경계할 필요는 있다고 보지만요.]
"그렇겠지. 역시 데려갈 필요는……."
"기다리세요."
살리아가 한 발짝 앞으로 나온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노아 장군과 겔트미르를 노려보았다.
살리아의 입장에서 제국은 아버지와 약혼자의 원수이다. 그곳에 속한 장수를 보고 드는 생각은 많을 것이다.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노려보는 살리아는 살며시 나를 돌아본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류마 님과 마키나 님께서는 아쿠로 대제와 맞서려고 하고 있죠. 정말 그게 맞습니까?"
"어, 어어."
"그렇다면 정전을 위해 준비했던 이 맹약의 서를 써서 강제로 계약을 맺어 주세요. 이 서를 쓰면 한 번 계약한 일에는 절대로 배반할 수 없게 됩니다."
맹약의 서. 그런 것도 있구나.
근데 괜찮나? 살리아한테는 원수 같은 존재 아닌가?
"상관없습니다. 노아 장군은 제국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라고까지 칭송받는 일기당천의 전사. 분명 류마 님의 힘이 되어 주시겠죠. 그리고 언젠가는 꼭……, 아쿠로 대제를 쓰러트려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 주세요……!"
감정에 북받쳐 흐르는 눈물.
살리아의 눈물에 나는 가슴이 아파졌다.
아버지를 잃고, 약혼자를 잃고, 고향의 거리는 화염에 휩싸였다.
열다섯 살 소녀가 짊어지기에는 너무나도 무거운 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각오를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알겠다. 약속할게."
눈물과 함께 건넨 맹약의 서를 받아들고 나는 힘주어 끄덕인다.
내가 뒤돌자 노아 장군은 씨익 웃었다.
"맹약의 서인가. 재미있군. 그럼 지옥으로 함께 갈 길동무를 늘려 보지 않겠나?"
"무슨 뜻이지?"
"거기, 겔트미르 공. 귀공도 우리를 따라와 보겠는가?"
"뭐……뭐라고?!"
뭐?!!
이, 이 자식도 데려간다고?!
"자, 장난치지 마라!! 이 겔트미르 라스오밀이 제국에 반기를 들 줄 아느냐?!"
"그건 앞으로 하기 나름 아니겠나? 아쿠로 대제는 패전한 장군을 용서해 줄 사람이 아니라네. 하물며 압도적인 전력 차로 패했으니 우리는 참수형을 면치 못할 텐데?"
"끄, 끄으응……!!"
"자, 잠깐 기다려! 난 데려간다는 말 안 했거든!"
"그러면 아깝겠지요. 이 사내 또한 제국의 맹장. 레벨 2400의 명인은 찾으려고 해도 안 나올 겁니다. 제국과 싸우려 한다면 강자를 하나라도 더 많이 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그렇군요. 맹약의 서로 속박하면 배신할 수도 없을 겁니다. 적극적으로 계약을 맺어 나갈 필요가 있겠네요.]
"그, 그런가~?"
나는 다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이 남자를 신용하기에는 위험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때, 밖이 소란스러워진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나 싶더니 숨을 헐떡이며 살리아의 종이 뛰어들어왔다.
"사, 살리아 님! 큰일입니다!!"
"무슨 일인가요?"
"폐, 폐하께서! 테라니아 국왕께서 이 저택에 행차하셨습니다! 지금 당장 살리아 아씨를 만나게 해 달라고……!!"
"비켜라!! 이 방에 있느냐, 살리아 로즈마인!!"
종을 밀어내며 헌병들이 들어닥친다.
잠깐잠깐 뭔 일이야?
왕이 뭐하러 이제서야 온 거야?
"폐, 폐하? 이건 대체……?"
"말할 것도 없다!! 아트 나이트를 침략한 제국군을 쫒아내다니, 터무니없는 일을 저질렀어!! 네놈들은 우리 나라를 멸망시킬 작정이냐?!!"
임금의 말에 모두가 얼어붙는다.
그것은 결코 승리한 자……, 하물며 전쟁 중에 가까운 사람을 잃은 자에게 내뱉어도 될 말이 아니었다.
"폐하……, 그 말씀이오면, 어떤……?"
"아쿠로 대제는 이번 일로 머리끝까지 화가 났느니라!! 군을 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신기까지 뺏어 갈 줄은!! 다행히도 통신 기록에 제국을 적대한 신기 적합자가 우리 나라와 무관하다고 남아 있었다만, 그러지 않았으면 우리 나라는 이미 멸망했을 게야!!"
임금의 말에 노아 장군이 끄덕인다.
"노력한 자에게 복이 온다고 하지. 자네가 무관하다는 건 저쪽에도 전해졌군."
"그래, 이걸로 후환 없이 떠날 수 있겠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임금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서찰을 펼친다.
"'네놈들의 나라가 제국을 공격한 신기 적합자와 무연하다면 즉각 포로를 송환하고 보상으로 <아트 나이트> 령을 헌상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세 명의 신기 적합자와 다섯 명의 신수 사역자, 열 척의 함정이 네놈들의 나라를 재로 만들리라.' ――이것이 조금 전 보내 온 서찰이다!!!"
"예……?! 고, 공갈을 받은 것만으로 <아트 나이트> 도를 팔아넘기시려는 것이옵니까?!"
"달리 무슨 수가 있겠느냐?! 우리나라는 서남 대륙에서도 가장 약한 국가!! 제국에 아양을 부리는 것으로 전란을 피해 왔다!! 제국의 비호가 없었으면 제3국이 쳐들어와 멸망했을 것을 모르느냐!!!"
"하, 하오나……!!! 그러면 죽어간 자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싸웠다고 해야 합니까……?!!"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호소하는 살리아를 국왕은 엄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네년도 남의 일이 아닌 줄 알거라, 살리아 로즈마인. <아트 나이트> 령을 헌상하는 것으로 로즈마인 가는 없는 게 되는 것이야. 제국의 의향에 따라서는 네년의 신병(身柄)을 인도해야 할 수도 있느니라. 미안하지만 구속하겠다."
"헉……?!"
"어이, 장난하지 마!! 이 애는 목숨을 바쳐 도시를 구하려고 했어!!"
보다 못한 나머지 큰소리를 낸다.
그러자 국왕은 놀란 것처럼 나를 쳐다봤다.
"옳지, 네놈이 말로만 듣던 그 사내로군?! 네놈 덕에 우리 나라는 쑥대밭이 되었어!!"
"틀렸어!! 쑥대밭은 유피테르 제국이 만들었겠지!! 책임을 전가하지 마!!"
"그 입 다물라!! 우리 왕국이 얼마만큼 많은 굴욕을 무릅쓰고 이 나라의 평화를 지켜 왔는지 모르느냐!! 제국이 웃으라고 하면 웃고, 울라고 하면 울고, 죽으라고 하면 죽는 게 테라니아 왕국의 도리야!! 제국에게 버려지면 다른 나라의 손에 망할 때까지!! 굴욕에 굴욕을 거듭하면서밖에 나라를 지킬 수 없는 우리의 심정을 네놈이 어찌 이해하겠느냐!?"
윽……! 노예근성도 이쯤 되면 대단할 수준이다. 이 임금님도 자기 나름대로 나라를 지키는 데 힘쓰고 있단다.
이 기개는 간단히는 꺾이지 않겠군.
나는 노아에게 묶인 자물쇠를 파괴하며 외쳤다.
"살리아, 와라!!"
"하, 하지만 제가 남지 않으면 <아트 나이트> 도가……!!"
"나라의 규정을 뒤엎지는 못해!! 지금은 도망치는 게 먼저야!! 너는 반드시 내가 지킨다!! 그리고 <아트 나이트> 도도 언젠가 반드시 되찾을게!! 약속이야!!!"
"ㄴ……네!"
"노아 장군! 지금은 당신 제안에 따를게! 함께 와 줘!"
"알겠네! 겔트미르 공은 어찌하겠는가?"
"에잇, 선택지가 없군!! 창문을 뚫고 나간다!!"
살리아를 품에 안은 나는 창문으로 탈출하고, 노아 장군도 뒤따른다. 겔트미르는 돌진해 벽을 산산조각냈고 그의 자물쇠를 노아가 벗겨 주었다.
저택 주변은 온통 헌병투성이다.
우리를 잡기 위해 모여 있는 헌병들을 날아차기로 날려 버린다.
벽이 부서질 정도의 힘으로 힘껏 날려 버렸으니 목숨에 지장이 없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다.
"아무렇게나 빠져나왔는데 어떡할래?! 완전히 포위됐으니까 강행돌파라도 할까?!"
"아니, 마키나 공! 귀공은 '천사(앙헬)'화가 가능한 신기인가?!"
[긍정! 전원 저의 주위에 모여 주세요!]
지시대로 마키나의 주위에 모인다.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이 헌병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최악의 경우 모두 때려눕히고 튈 수밖에 없다.
검은 고양이 모습이던 마키나가 빛을 내기 시작하더니, 강렬한 마력의 줄기가 우리를 감싼다. 우리를 감싼 마력은 그대로 공중으로 솟구쳐 거대한 함정으로 모습을 바꿨다.
"아니 이게 뭐시여어어어어?!"
[데우스 엑스 마키나 · 앙헬. 신기 라미엘과 똑같은 함정으로 변한 모습. 최대 탑승 인원 350인. 거주 구역 완비. 무음 비행 가능. 최대 속도 마하 3. 소형이지만 틀림없이 최고의 공중 함정일 겁니다. 에헴.]
"그, 그거 대단하네. 오버 테크놀로지인 것도 정도가 있지."
<아트 나이트> 도는 지금쯤 난리가 났을 것이다.
헌병들도 아연실색해 올려다보고 있을 게 틀림없다.
"류마 공은 조타석으로! 테라니아 왕국에 공중 함정은 존재하지 않네!! 당장 이륙하지!!"
젠장, 변신 다음에는 군함 조종인가!! 두 번째 생은 너무 할 게 많구만!!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조종간을 잡기만 해도 괜찮아요. 그 다음은 본 기기가 서포트합니다.]
"아 그러냐! 하면 되잖아, 하면! 무사고 베테랑 운전자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 주마!!!"
조종간을 움켜쥐고 마력을 주입한다. 엔진에 불이 붙은 것처럼 명동하는 공중 함정.
마키나와 융합했을 때처럼 모든 감각이 함정에 옮겨 가, 공중에 뜬 매의 시각을 가지게 된 듯한 착각을 느낀다.
맑개 갠 하늘 저편을 응시한 함정은 마치 한 마리 흰까마귀처럼 양 날개를 펼친다.
아득히, 아득히……. 지평선 저 너머까지 보인다.
처음 보는 이 세계 <발 바티르>의 넓이에 무심코 숨을 삼킨다.
이 드넓은 세계에서 수많은 나라와 조직을 상대하며 열두 신기를 모아야만 한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못 이루고 죽은 나 따위가.
……아니, 분명히 할 수 있다.
환생한 이 세계에서 이번에야말로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남자가 되자.
이륙하는 찰나, 나는 <아트 나이트> 도를 내려다봤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다. 언젠가 반드시 제국의 손에서 해방시켜 줄게. 약속이야!"
--- 번역 코멘트 ---
▶ 이세계 영웅기담은 이 화를 끝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번역을 봐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 노아의 종족인 기인족, 아이언 아미에 나오는 세이이치로의 종족 철인종에 서로 연결고리가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전투와 노동에 특화된 종족이지만 현재는 소수라거나, 전투 시에 가지고 있는 부품을 변형시켜 싸우는 점이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신기 사용자를 '적합자'라고 칭하는 걸 보면 혹시 이 세계관도 성신입자체와 관련되어 있고 신기 또한 그 입자체로 움직이는 물건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아이언 아미에서의 철인종과 입자체의 관계는 이 글로.
▶ 로컬라이징이 있습니다.
ゴールド免許(골드 면허) → '무사고 베테랑 운전자'
골드 면허는 일본의 운전면허 제도에서 가장 높은 등급으로 면허 취득 후 5년 동안 도로법규를 위반하지 않고 무사고인 운전자에게 수여하며, 이 등급 운전자는 보험료가 할인되는 등 여러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모범운전자'나 비공식 표현인 '무사고 베테랑 운전자'에 해당하죠. 모범운전자의 조건은 2년으로 더 짧기 때문에 후자를 채용했습니다.
▶ '우리나라'와 '우리 나라'는 띄어쓰기 실수가 아닙니다.
같은 국민들끼리 자신이 속한 나라를 칭할 때는 전자, 다른 나라에 자신의 나라를 설명할 때는 후자를 사용합니다.
임금↔살리아, 살리아→류마처럼 같은 국가에 소속감을 느끼는 사람끼리 말하는 상황에서는 붙여 썼고, 임금→류마처럼 서로 다른 국가집단으로 의식하면서 대화하는 상황에서는 띄어 썼습니다.
'정규소설번역 > 이세계 영웅기담(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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