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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소설번역/이세계 영웅기담(完)

3화 - 드러나는 악, 눈떠라 강철 1

by PPJelly 2022. 4. 2.

생전의 꿈은 언제나 끔찍하게 시작된다.

그 중 유독 끔찍한 것은 담당하던 사건이 허물어졌을 때의 일이다.

 

[――좀 성숙해져라, 죠가사키. 상대가 잘못한 일이잖아.]

 

부장의 볼멘소리를 떠올릴 때마다 내장이 뒤틀릴 듯한 느낌에 휩싸인다.

그 남자를 기소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다 갖춰 놓았다는데, 그 모두가 경찰청장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

마약상이 하필이면 경찰청장의 아들이었다니, 지독히도 웃기는 일이다.

강제로 약물 파티에 동원된 여성은 지금도 혼수상태에 빠진 채 눈을 뜨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손을 떼 버리면 그녀의 원통함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죠가사키. 세상은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돌아가는 거야. 이번 마약상은 거물 정치가의 돈줄이나 연예계 인맥을 휘어잡고 있어. 더군다나 청장까지 관련돼 있다고 하면 그리 쉽게는 잡을 수 없어. 너도 알잖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회 정의의 상징인 경찰에 소속된 사람들이 범죄를 조장하고 있다면 이 세상의 어떤 이치가 그들을 심판할까.

우리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할 수 있을까.

 

[실망했다, 죠가사키. 너한테 경찰청 일은 너무 무거웠던 것 같다. 네게 맞는 이직처를 마련해 주도록 하지. 바다가 보이는 좋은 일자리야.]

 

요컨대 수사를 계속하려는 나를 시골로 좌천시키겠다는 것이다. 도쿄에서 쫓겨나게 되면 사건을 계속 수사하는것은 불가능해진다.

공무원을 처음으로 쓰레기 같다고 생각했던 순간이다.

 

그 때부터 그 망할 자식을 후려팼을 때까지의 일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징계면직을 당한 나는 패배자처럼 시골로 도망치듯 돌아가게 된다.

 

……피해 여성은 지금도 잠든 그대로일까.

적어도 그녀의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는 조사에 진척을 내고 싶었는데……. 그런 기적은 바랄 수조차 없겠지. 

 

아, 이 얼마나 한심한 인생인가.

죠가사키 류마는 사회악에 패했을 뿐만 아니라,

보호받아야 했을 무고한 여자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  *  *  *  *

 

 

 

[경고!! 경고!! 경고!!

죠가사키 류마, 긴급사태입니다!!

즉각 의식의 각성을 요한다!!]

 

핫하고 눈을 뜬다.

마키나는 지금껏 낸 적 없는 다급한 음성으로 나를 때리며 일으켰다.

 

"왜 그래, 마키나?!"

[거친 수단으로 각성시켜 대단히 죄송합니다! 먼저 주위 광경을 확인해 주세요!!]

 

전방위의 정보를 일제히 보여 주는 마키나.

내 시각에 쏟아져 들어온 것은 요란하게 불타오르는 도시의 정경과 적병에게 쫓기는 주민들이었다.

 

"이…… 이게 뭐야??!"

[추측! 유피테르 제국이 도시를 침공한 모양!]

"뭐?! 전황은 어떤데?!"

[<아트 나이트> 도의 병력은 약 2,500! 그에 비해 유피테르 제국은 수인족을 포함해 35,000이며 공중 함정이 세 기! <아트 나이트> 도의 승산은 10%입니다!!]

"고……공중 함정이라고?!"

 

이미 마을을 보호하는 성벽은 파괴되었고, 아비규환의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연분홍색 꽃을 피우던 나무들은 불타 무너지고 마을을 수호하는 대수에도 불길이 번지고 있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지옥이 그 화사한 <아트 나이트> 도시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적병은 창을 치켜들며 사납게 외친다.

 

"남자는 죽여라!! 여자는 범해라!! 거역하는 자는 범한 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유피테르 제국에 거스르는 자는 몰살한다!!!"

 

"ㅇ, 이 망할 자식들!!!"

 

이게 아쿠로 대제가 이끄는 유피테르 제국.

들은 것보다 더한 극악무도함에 격노한다.

 

"마키나! 살리아네는 무사해?!"

[탐색 개시! 현재 위치를 확인! 영상을 송출합니다!]

 

마을에서 제일 큰 저택의 안뜰에 그녀는 있었다.

그녀의 발치에 굴러다니는 유체는 도장이겠지. 복부에서 다량의 피를 흘리면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칼을 겨누면서 그녀가 상대하고 있는 것은 인마일체의 거병.

켄타우로스라 불리는 수인이 버티고 서 있다.

살리아는 떨면서 그 거병을 올려다보며 꿋꿋하게 호령한다.

 

"네 이놈들, 유피테르 제국……! 잘도 아버님을!!"

"흐하하하하!! 당당하게도 검을 쥐려는군, 도장의 딸이여! 하지만 이미 태세는 기울었다! 네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군문으로 빠져나가도 좋다! 여자라면 살려 줄 수 있겠지!"

"웃기는 소리 마세요! 나는 <아트 나이트>를 지키는 도장의 딸입니다! 유피테르 제국에 굴할 바에는 마지막까지 싸우겠습니다!!"

 

호오 하는 감상에 젖은 듯한 목소리.

 

"무인으로서의 죽음을 선택했나. 과연 도장의 딸이란 이름에 걸맞긴 하군. 하지만 그에 따른 부담은 크다만?"

 

거병이 창을 들어올리자 제국군이 우르르 튀어나와 그녀에게 접근한다.

 

"자, 제국의 신민이여. 귀중한 여전사다. 규율대로 범한 뒤 죽여라."

"큭!!"

"웃기지 마!!!"

 

완전히 머리에 피가 몰린 나는 마키나를 보고 소리쳤다.

 

"마키나! 전에 했던 것처럼 싸우게 해 줘!! 살리아가 위험해!!"

[부정! 본 기기는 자기 보호를 위한 긴급 이동을 추천! 140초 후에 전이합니다!!]

"뭐?! 이 도시를 버리라는 말이야?!"

[진정하십시오, 죠가사키 류마! 본 기기는 이미 소생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육체 소생이 종료될 때까지 앞으로 48시간!! 이 시간을 무시하고 강제 진행한다면 소생에 실패하고, 최악의 경우 죽음에 이릅니다!]

 

우리가 잠든 날로부터 이미 198일이 경과해 있었다.

육체를 재구성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말이다.

 

[만일 긴급 발진할 경우 소생 성공률은 현 단계에서 8.8%! 전투 가능 여부는 2.3%! 본 기기는 유저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진언합니다!]

"위험하더라도 상관없어! 지금 당장 실행해 줘!!"

[기각합니다!!]

"마키나!!!"

[기각!!! 본 기기는 유저의 생명을 최우선시합니다!! 부디 참으십시오, 죠가사키 류마!]

 

소생 가능성은 0%에 한없이 가깝다.

나를 소생시키는 일을 우선시하는 것은 마키나에게 있어 최우선 사항일 것이다.

 

입술을 깨물며 살리아에게 시선을 옮기지만, 그녀의 힘으로는 굴강한 제국군을 상대로 싸울 수 있을 리 없다.

몇 번쯤 맞부딪힌 끝에 칼은 부러지고 벽에 내동댕이쳐진다.

제국군은 드높게 웃으며 양팔을 묶고 재갈을 물린 다음 의복을 찢어나간다.

 

도저히 볼 수 없었다.

무고한 여자가 유린당하는 것을 다시 막지 못하게 되는 것인가.

그것이 얼마나 굴욕적인지는 몸소 알고 있을 것이다.

 

"……마키나, 기억하냐? 이 도시에 와서부터 매일 살리아가 참배하러 와 줬던 걸. 매일 몸을 닦아 줬던 그 애가, 웃으면서 세상 이야기를 해 주던 날들을."

[…….]

"아이가 난산으로 죽을 뻔했던 때, 넌 투덜거리면서도 멈추지 않고 도와 줬었지. 무사히 아이가 태어났을 때 기쁜 것처럼 한숨짓는 걸 듣고 난 널 신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 ……그 때의 아기도 지금쯤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을지 몰라."

[……큭.]

"<아트 나이트>는 참 괜찮은 도시야. 사람들은 다들 친절하고, 춘하추동을 축복하는 축제는 화려한 빛깔을 내. 미소가 끊이지 않는 좋은 곳이야. 그런 멋진 도시가…… 눈앞에서 지옥으로 바뀌고 있는 걸, 넌 묵묵히 지켜볼 수 있을 것 같아?!"

[……죠가사키 류마. 나는 기계장치의 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 즉 신이 창조한 AI입니다. AI에게 마음은,]

"틀렸을 거야!! 그렇지 않을 거야!! 정말 도시를 구하고 싶지 않았다면 왜 날 일으켰냐?! 내가 자는 동안 말없이 방관할 수도 있었겠지!! 아니야?!"

 

헉, 마키나는 숨을 삼켰다.

마키나도 자기모순을 깨달아 반박하지 못하고 허둥거렸다. 

싸울 생각이 정말 없었다면 나에게 의견 따윈 요구하지도 않았을 터다. 마키나의 마음도 사실은 각오로 다져져 있었을 것이다.

이 참상을 어떻게든 해결하기 원한다면!

함께 싸웠으면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넌 날 불러 깨웠을 거야!!!

진정한 마키나는…… 이런 지옥을 용납하지 않는 마음 따뜻한 녀석일 거야……!!!

 

"그러니 부탁할게, 마키나."

[……류마. 성공할 가능성은 극도로 낮음.]

"응."

[목숨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죠?]

"그래!"

 

목숨을 걸고…… 나는 이 세계에 환생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풀 오픈 · 헤븐즈 도어 기동!

성신 데미우르고스의 이름 아래 성문을 연다!

성령을 이곳에! 황금과 백은의 열쇠를 내걸어라!]

 

뇌수를 불태우는 듯한 아픔. 거센 정보의 소용돌이가 격렬한 번개가 되어 온몸을 경련시킨다. 지금까지 애매했던 감각이 되살아남과 동시에 통증으로 변해 간다.

삶의 기쁨과 죽음의 고통을 동시에 맛보며, 나는 나라는 객체의 생을 쌓아올린다.

죽음을 경험할 때마다 생전의 견디기 힘든 굴욕적인 기억이 되살아난다.

 

――좀 성숙해져라, 죠가사키.

 

개소리하지 마.

사회의 정의를 책임지는 역할로서 부끄러운 줄 알아라.

 

――세상은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돌아가는 거야.

 

그럼 힘없는 자는 어쩌라는 거지.

버팀목이 되어야 할 정의에 배신당하고 울부짖는 그녀의 가족에게 난 무슨 말을 걸어야 했을까.

 

――실망했네, 죠가사키.

 

내가 할 말이다 대머리독수리. 초등학교 도덕책부터 다시 읽고 와라.

난 이제 부조리에 지지 않겠어.

눈앞의 악에 굴하지 않겠어.

 

죽음에 휘감길 듯한 신체를 분노와 열기가 강제로 끌어올린다.

 

아아, 그래. 이번 생은 그렇게 살아가자.

어떤 인과가 부여해 준 제 2의 삶.

이번에는 반드시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생애를 보내자.

 

하늘의 문을 열고, 강철의 신체를 구축한다.

불꽃과 번개가 난무하는 가운데 나는 첫 걸음을 내딛는다.

 

자, 가자. 기계장치의 동반자!

이 철권은 악을 부수기 위해 있다――!!!

 

 

 

 

 

 

 

 

 

 

--- 번역 코멘트 ---

 

 

▶ 내일은 정오와 저녁 6시로 2회 연속 연재됩니다.

 

▶ 이거 완전 버1닝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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