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규소설번역/이세계 영웅기담(完)

4화 - 드러나는 악, 눈떠라 강철 2

by PPJelly 2022. 4. 2.

의복을 찢기고, 양팔을 구속당하고, 재갈이 물려진 살리아는 분함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구속된다면 이미 자해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못한다.

훤히 드러난 여자의 신체에 떼지어 모이는 제국군들에게 굴욕을 당하고 죽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헤헤, 젊은 여자가 오다니 참을 수 없군."

"맞아. 제국 신민 만세다 이거지!"

"이봐, 빨리들 하라고. 이 일이 끝나면 재산을 털러 갈 거야."

"뭘 그래! 이 녀석들의 속도는 보증수표라고!"

"이봐 인간. 할 게 있다면 우리 웨어울프에게 맡겨라. 인간 여자 같은 건 전장에서밖에 맛볼 수 없으니까 말야."

상스러운 웃음을 짓는 제국군과 수인족.

그 추함은 꿀에 모여드는 개미와도 같았다.

살리아는 떨면서 눈을 감고 자신의 앞날에 대해 기도했다.

 

'아버님……! 정령님……!"

 

붉은 기와지붕이 아름다웠던 거리는 진작 불타 무너졌고, 그녀가 사랑했던 도시는 풍전등화가 되었다.

누구나 친절했던 <아트 나이트> 도가 이런 최후를 맞는 것이 분하고 슬퍼서 어쩔 수 없었다.

유피테르 제국을 향한 저주로 물드는 그녀가 당장이라도 범해지려 하던 그때.

 

한 줄기 바람과 함께, 제국군이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뭐, 뭐야?! 네놈은 누구냐?!"

"제국 사람은 아니구나?!"

"――……."

 

무언. 강철의 전사는 추한 제국군들의 말에 반응하지 않는다.

동시에 구속에서 풀려난 살리아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반쯤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도시의 병력은 이미 와해되어 구조에 나서는 것 따윈 할 수 없을 터.

아무도 구하러 올 리가 없다.

방황하는 그녀에게 부드러운 목소리가 와닿았다.

 

"괜찮냐, 살리아?"

"아…… 당신은……!!"

 

살리아는 무심코 울 것 같아진다.

온몸을 뒤덮는 강철의 갑옷. 심홍색 스카프.

냉소적인 인상을 가져다 줄 터인 풀 페이스인데, 가면 아래에서 떠도는 시선은 따스함을 지니고 있다. 그 시선을 살리아는 알고 있다.

잊을 수 없는 5년 전.

더비 울프에게 습격당했던 살리아를 구해 준 강철의 전사가, 지금 다시 한 번 그녀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정령님……!! 정령님, 저……!!"

"늦어서 미안하구나. 바로 정리할게."

"뭐어?! 갑자기 나타나서 뭐하는 짓이야 인마!?"

"알 바냐! 모두 덤벼라!"

 

전방위에서 달려드는 제국군과 수인족.

자신을 향해 쳐든 칼을 손바닥으로 받아낸 류마는 제국군에게 주먹을 날려 대지에 나가떨어지게 했다.

등뒤에서 온 칼날은 그 제국군의 손목을 잡은 뒤 몸뚱이를 한꺼번에 휘둘러서, 주위의 제국군까지 싸그리 쓰러뜨린다. 그리고 인접한 집 세 채를 지난 거리까지 튕겨날려 버렸다.

땅에 격돌한 제국군은 다들 갑옷이 산산조각나 재기불능일 정도의 피를 흘리며 나동그라져 있다.

살아남은 제국군은 그 짐승 같은 전투력에 다리가 풀려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뭐, 뭐, 뭐야 네놈은……!"

"인간이 싸우는 것 같지 않아……."

 

살리아에게서 등돌리는 강철의 전사――죠가사키 류마는, 장군으로 보이는 켄타우로스 거병에게 다가간다.

부하들을 일소당한 켄타우로스 거병은 콧방귀를 뀌면서 불손하게 웃는다.

 

"호오, 드디어 기개 있는 전사가 나타났나. 하지만 늦었구나. 전투의 추세는 이미 정해져 있어. 네놈 혼자서 뭘 할 수 있겠느냐? 내 창의 명예가 되는 것이 유일한 길이겠지."

"――……."

"나는 유피테르 제국 육기장(六旗将)중 하나! 켄타우로스족인 겔트미르다! 강철의 전사여! 이곳에서 지도록 하거라!!!"

 

소리를 내면서 거칠게 난무하는 겔트미르의 창이 섬광과 같은 예리함으로 류마의 가슴팍을 노린다. 그러나 그 창의 끝자락을 류마는 간단히 멈춰세웠다.

 

"으윽?!"

 

신음하는 겔트미르. 그 자리에서 창을 되돌리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악력과 완력만으로 완전히 억눌리고 있다.

 

'말도 안 돼?! 나는 레벨 2400이라고?! 단순한 인간한테 질 리가 없어!'

 

수인 중에서도 극히 수명이 긴 켄타우로스족은 천 년은 족히 살아간다. 200년의 세월을 수련에 소비한 깔끔한 창기술은 음속을 넘은 신속(神速)의 영역에 접어들어 있다.

그럼에도 상관없이, 죠가사키 류마는 가볍게 받아냈다.

 

창끝을 움켜쥔 류마는 분노에 찬 두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묻는다.

 

"겔트미르, 너는 이 도시의 참상을 보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냐?"

"뭐야?"

"몸에 불이 붙은 채 도망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칼을 맞고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고. ……소중한 누군가를 잃고 울부짖는 사람들을 보고, 너는 아무 생각도 안 드는 거냐?"

"하, 뭘 말하나 했더니! 이러한 정경은 전장에서는 일상다반사! 적국의 백성이 지르는 비명 따윈 자장가나 다름없느니라!"

 

드높이 폭소하는 겔트미르. 침략대국인 유피테르 제국의 장수에게 있어서 이런 광경은 익숙하다는 것이다.

이 악행이.

이 지옥이.

이 남자의 일상이라면.

 

"그래. 잘 알았다."

 

힘껏 움켜진 창끝이 부서진다.

류마는 눈동자를 빛내며, 짐승과도 같이 포효했다.

 

"난 이제―― 너희들을, 인간이라 생각할 수 없겠어……!!!"

 

한순간 겔트미르의 품으로 파고든 류마는 아래에서부터 그 거체를 차올렸다.

다른 때 같으면 작은 병사의 발길질로 웃어넘길 만한 체격차였지만, 그 일격은 거체를 공중에 띄웠을 뿐만 아니라 저편에 있는 성벽까지 날려 버렸다.

 

"끄악!!?"

 

울려퍼지는 굉음.

각혈하면서 성벽에 날아가 꽂히는 겔트미르.

빠르게 도약하여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류마.

 

"나도 주먹으로 싸우는 걸 싫어하지는 않아! 너희처럼 빼앗는 쪽인 인간은, 뺏기는 자의 심정 따윈 이해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네 이놈……! 거드름피우지 마라!! 내 최대의 오의를 받도록 하여라!!"

 

끝이 부러진 창에 불꽃을 붙여 최대의 마력을 담아 난무한다. 일격에 성벽을 깎아낼 만큼의 불을 축적한 창이 난무하는 모습은 마치 불꽃 폭풍이라 부를 만하다.

허나 그 직전에 마키나가 선언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풀 오픈 · 스킬 다운로드!

내염 방어 취득!

내참(耐斬) 방어 취득!

권격 강화 취득!

물리 증강 취득!

순간가속 취득! ――상기 내역을 최고 레벨로 올 클리어!

류마, 가죠!!]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겔트미르 최대의 오의를 받아내며 무심히 주먹을 때려박는다,

불꽃의 참격을 막으며 주먹을 난사하는 그 모습은 마치 귀신과도 같았다.

 

주먹 하나에 분노를 담아.

주먹 하나에 슬픔을 담아.

겔트미르가 한 대를 날리는 동안 류마는 백 발을 날린다.

 

"바, 바보 같으니……!"

 

걸레짝이 된 겔트미르는 각혈하며 낙하한다.

아마 이제 싸울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걸로 끝난 것은 아니다.

불길이 점점 퍼지는 성곽은 여전히 지옥의 모습이었다.

 

"마키나! 마을을 어지럽히는 녀석들을 쓸어버리고 싶어! 할 수 있어?!"

[가능합니다!]

"좋아, 부탁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풀 오픈 · 스킬 다운로드!

확산 강화 취득!

색적 강화 취득!

탄막 강화 취득! ――상기 내역을 최고 레벨로 올 클리어!]

"좋았어! 확산성 포탄 마법 <호밍 블레이즈 캐논> 발사!!"

 

양팔에서 일제히 발사된 마력의 광탄이 십이 되고, 백이 되고, 천이 되고, 만이 되어 마을에 쏟아진다. 빛나는 광탄은 마치 유성과도 같다.

마을에 침입했던 5600명의 제국군에게 삼만이천 발의 탄환이 쏟아진다.

제국군들이 일제히 소탕되기 시작하자 전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바, 방금 유성은 뭐야?!"

"신의 기적인가……?!"

 

만신창이로 싸우고 있던 아트 나이트의 전사들은 돌발적인 일에 방심하고 있다.

하지만 당연하리라.

성벽 상층부에서 쏟아지는 유성군은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제국군만을 골라 꿰뚫으며, 마을의 참상을 일변시킨 것이다.

살리아는 양손을 깍지끼고 신 앞에 무릎을 꿇듯이 울기까지 하고 있다.

 

"정령님……! 이게, 정령님의 기적이야……!"

 

성벽 내의 적은 전멸시켰다.

장수를 토벌했으니 적군들은 패하여 달아날 것이 틀림없다.

 

[성공하셨군요, 류마.]

"그래. 하지만 핵심인 녀석이 남아 있어."

 

거리 저편에 정박해 있는 공중함정.

그것을 어떻게든 처리하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할 수 있겠어? 우리 둘이서."

[두 기까지는 분명히 될 겁니다. 하지만 딱 한 기가 강력한 마력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보틍 수단으로는 안 된다는 건가."

[YES. 물러날까요?]

"뭘 이제 와서! 여기까지 왔으니 척척 해치우는 것뿐이야!"

[확인! 갑시다, 류마!]

 

 

 

 

 

 

 

 

 

 

--- 번역 코멘트 ---

 

 

 

▶ 이번에는 오타난 것 같은 부분이 두 군데 보입니다. 여기 써 뒀다가 정정하는 대로 지우겠습니다.

 

성벽 내의 적은 전멸시켰다. 장수를 토벌했으니 적군들은 패하여 달아날 것이 틀림없다. 

원) 城壁内の敵は一掃した。将も討たれたとなれば潰走は間違いない。敵兵も 

 

거리 저편에 정박해 있는 공중함정.

원) 艦艇の外、街の彼方に居座る空中艦艇。

 

 

▶ 이번에는 육기장이라는 집단이 등장했는데 여섯 개의 깃발이라는 뜻이 문제아 언더우드편에서 나온 환수 연맹을 연상시키네요. 더불어 음속과 함께 나온 신속이라는 단어도 나중에 명백한 정의가 나올지 궁금해집니다.

반응형

댓글